삼성전자, 메모리 공급 부족 2028년까지 지속 전망… 다년 계약으로 생산량 60~70% 확보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 2026년 7월 29일
삼성전자가 또 한 번 기록적인 분기 실적을 달성했으나, 투자자들에게 더 중요한 소식은 경영진이 제시한 메모리 사이클에 대한 이례적이고 구체적인 다년 전망이었다. 삼성전자는 DRAM과 NAND 공급 부족 현상이 최소 2028년까지는 크게 완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메모리 사업 구조를 장기 선급 공급 계약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 주식의 변동성 프로파일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화다.
2028년까지 구조적으로 타이트한 메모리 시장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글로벌 영업·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삼성의 수급 논리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3년이 넘는 팹(Fab) 리드타임으로 인해 "2028년까지 공급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며, 2026년의 미충족 수요가 2027년으로 이어지면서 제약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9년 이후의 가시성은 낮지만, AI 토큰 증가세가 중기적으로 수요를 기하급수적으로 견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설명한 역학 관계는 업계에서 이례적이다. 하이퍼스케일러의 클라우드 용량을 확보하지 못한 AI 프론티어 모델 개발사들이 네오 클라우드(neo-cloud) 제공업체로 눈을 돌리고 있고, 이들조차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하자 모델 개발사들이 직접 삼성전자에 다년 공급 계약을 타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하이퍼스케일러-OEM 관계를 넘어선 제3의 수요층을 형성했으며, 삼성전자가 상당한 규모의 선급금을 받는 5년 단위 롤링 계약을 기꺼이 체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체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다년 계약
이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상위 5개 데이터센터 고객사와 다년 계약을 완료했으며, 추가로 5개사와 최종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유연성 확보를 위해 장기 계약 비중을 전체 생산량의 60~70%로 제한할 계획이었으나, 김 부사장은 기존 계약자를 포함한 수많은 고객의 추가 요청으로 인해 해당 상한선이 "점점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계약은 5년 단위로 매년 재협상 옵션이 포함된 롤링 구조다. 삼성전자는 향후 투자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주력 제품에 대한 최소 가격 하한선(price floor)을 설정했으며, 이미 전체 선급금의 약 4분의 1을 수령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NDA(비밀유지협약)를 이유로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 부사장은 "사업의 안정성과 가시성을 크게 높이고, 과거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던 메모리 사이클에서 벗어나 '수주 기반(backlog-driven)' 모델로 전환하고자 한다"며 전략적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것이 유지된다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수익 창출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기며, 사이클 변동성을 줄이는 대신 마진을 확정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HBM4 확대 및 균형 잡힌 제품 포트폴리오
삼성전자는 이번 분기에 업계 최초로 HBM4E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으며, 3분기 HBM4 매출이 전 분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하고 하반기 전체 HBM 매출에서 HBM4가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영진은 HBM의 높은 마진을 쫓느라 일반 DRAM을 희생하기보다, 서버 DRAM과 범용 컴퓨팅 수요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HBM 시장 점유율을 전체 DRAM 점유율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두 분기 연속 이어진 이 균형 잡힌 전략은 삼성전자가 HBM의 단기적 마진 극대화보다 생산 능력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록적 분기 실적, 그러나 부품 비용 압박 받는 세트 사업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8% 증가한 171조 5,000억 원, 영업이익은 56% 증가한 89조 5,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률은 43%에서 52%로 확대됐다. DRAM 평균판매단가(ASP)는 전 분기 대비 40% 중반대, NAND ASP는 약 60~70% 급등하며 메모리 시장의 공급 부족 상황을 방증했다. 박순철 CFO는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로 영업이익이 약 3조 1,000억 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메모리 공급 부족의 이면에는 삼성전자의 세트 사업부가 동일한 부품 인플레이션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 존재한다. 모바일 경험(MX) 부문은 네트워크 사업부와 합산하여 7,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다니엘 아라우조는 모바일 메모리 비용 상승이 하반기까지 수익성을 압박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영상디스플레이(VD)와 시스템LSI 사업부도 유사한 부품 비용 부담을 언급했다. 이는 메모리 사업부가 스스로 유발한 공급 부족의 혜택을 가장 크게 입는 동시에, 자사 하드웨어 사업부에는 부담을 주는 내부적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파운드리 전환점 도래, 2나노 주문 2배 증가
파운드리 사업은 변곡점에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8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가동률은 풀(full) 가동 상태에 도달했으며, 강석채 부사장은 2026년 2나노 주문량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와 AI/HPC 고객사로부터의 신규 프로젝트 수주와 더불어 브로드컴(Broadcom)과의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첨단 공정은 파운드리 매출의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AI/HPC 애플리케이션 비중은 2025년 10% 후반에서 2026년 30% 이상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강 부사장은 "단기 내 수익성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다"고 밝혔으나, 수주 기반 사업 특성상 구체적인 분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미국 테일러 1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순항 중이며, 테일러 2공장은 연내 착공해 2030년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1.4나노 공정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주주 환원 정책 미정, ADR 발행 검토 안 해
투자자들이 2024~2026년 주주 환원 정책의 후반부 내용을 기다리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이사회에서 특별 배당 가능성을 포함한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이며 차기 다년 정책을 동시에 수립하고 있다고 밝히며 구체적인 답변을 미뤘다. 박 CFO는 장기 공급 계약에 따른 고객 선급금과 직원 보상과 연계된 자사주 매입이 환원 계산의 기준이 되는 잉여현금흐름(FCF)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차기 정책 발표 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복잡한 요인이 있음을 시사했다.
경쟁사의 미국 상장 이후 주목받았던 ADR(미국주식예탁증서) 발행 질문에 대해 박 CFO는 "현재 ADR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유동성 분산과 국내 주식과의 밸류에이션 차이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ADR 발행을 적극적인 계획이 아닌 장기적인 옵션으로만 열어두었다.
로봇 사업 확대 및 하만(HARMAN)의 ADAS 공세
삼성전자는 로봇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로봇 사업 역량을 CEO 직속의 새로운 RX 사업실로 통합했으며, 구미에 로봇 파일럿 라인과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 중이다. 또한 현대차 보스턴 다이내믹스 전략팀 출신인 이동건 상무를 영입해 로봇 전략을 총괄하게 했으며, 자율 로봇 및 로봇 손 분야의 학계 전문가 2명도 채용했다. 우선적인 목표는 B2B 제조 및 물류 애플리케이션이며, 휴머노이드 로봇과 B2C 확장은 장기 목표로 M&A 및 스타트업 투자도 병행할 예정이다.
별도로 하만은 ZF의 ADAS 사업부와 사운드 유나이티드(Sound United) 인수를 통해 디지털 콕핏을 넘어 자율주행 하드웨어와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박 CFO는 이를 통해 하만이 차량 제어 장치 통합을 기반으로 "글로벌 자동차 전장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